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 러셀 (문단 편집) === 과대평가론과 반박 === 먼저 여기서 언급되는 과대평가론은 어디까지나 러셀 시대를 직접 보지 못했던 팬들 사이에서 주로 언급되는 설이며, 전문가들이나 동시대 빌 러셀을 직접 보고 공부하던 후배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아니다. 우선 빌 러셀은 분명 의심할 여지 없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설 중 하나이며, 당시 NBA를 지배하던 최고의 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러셀은 NBA 과대평가된 선수 중 하나라는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며, 이는 가장 꾸준한 NBA 논쟁떡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빌 러셀 외에도 동시대의 전설적 선수들에게 공통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그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당시의 NBA가 오늘날과는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빌 러셀을 평가절하할 경우 주로 다음과 같은 3개의 논점이 사용된다. 1. 1950~1960년대에는 팀이 8~9개밖에 없었다. 2. [[윌트 체임벌린]]이 개인 기량으로는 더 뛰어난 선수였다. 3. 당시 셀틱스는 모든 선수가 명예의 전당급이었던 초강팀이었다. 가장 먼저, 당시, 그러니까 1960년대 NBA에는 팀이 9개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샐러리 캡]]도, 사치세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리그의 최정상급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서 한두 팀에 몰리기 마련이고, 그런 팀들은 당연히 다른 팀들에 비해 우승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결국 그 팀들이 리그를 사실상 완전히 지배하며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우승 반지를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30개의 팀들이 챔피언십을 위해 트레이드와 드래프트에 목숨을 걸고, 수 시즌 째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못해 허덕이는 팀들이 허다한 오늘날의 NBA에 비하면 당시에는 양대 팀 중 하나에 소속될 수만 있다면 우승하기가 훨씬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시에는 경기 내 규칙이라든가 코트의 규격 등에 차이가 있어서 오늘날에 비해 훨씬 볼 점유 시간과 빈도가 높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3점 슛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때문에 당시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득점도 득점이지만, 리바운드의 스탯이 터무니없이 높다. 이는 윌트 체임벌린의 100득점과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인데, 당시의 스탯(기록)들은 분명히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부풀려진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쪽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81득점이 [[윌트 체임벌린]]의 100득점보다 훨씬 위대한 기록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단 한 번의 우승을 위해 말년에 팀을 옮겨가며, 노구를 이끌고 피나는 특훈을 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했음에도 결국 반지를 끼우지 못하고 통한의 은퇴를 한 슈퍼스타들이 리그에는 한 둘이 아니다. 한 마디로 전쟁터와 같은 오늘날의 리그와 비교하면 당시의 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은 분명 훨씬 쉬운 축에 속했을 것이다. 9개의 팀이 속한 리그에서 11회 우승하는 것과 30개의 팀이 속한 리그에서 11회 우승하는 것을 과연 동일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위의 논리는 빌 러셀 뿐 아니라 당시를 보낸 선수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대평가론을 언급하는 것이 조금 이상한 것이 빌 러셀의 11회 우승은 이미 사실상 시대보정을 적용해서 평가받고 있다. 그 증거로 마이클 조던의 우승은 총 6회로, 러셀보다 우승횟수가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인데도 모든 매체에서 당연한 듯이 러셀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즉, 만약 러셀의 11회 우승을 현대의 11회 우승과 동일하게 평가했었다면 그는 스탯이고 뭐고 조던은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넘버원으로 평가되어야 옳다.[* 농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우승이다. 이는 같은 팀 스포츠인 야구와 다른 점인데, 야구는 우승 반지가 없어도 그 선수의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표적 예로, 역대 최고의 투수라 평가받는 [[월터 존슨]]은 커리어 내내 우승이 없다가 말년에 겨우 반지 하나 땄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독립적인 타석으로 구성되는 야구와 유기적 플레이로 구성되는 농구의 차이 때문. 야구는 한 명이 팀의 우승을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만, 농구는 어찌 됐건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MLB는 우승을 중요시하긴 해도 선수의 평가에서 포스트시즌 성적은 부가적 요소일 뿐이나, NBA에서는 정규 시즌은 연습 게임이고 포스트시즌이 진짜라는 마인드가 있다.] 그런데 그의 위치는 현재 조던보다는 당연히 아래, 2회 우승인 윌트 체임벌린과 6회 우승인 카림 압둘자바와 비슷하게 묶여서 평가받고 있다. 즉, 러셀 시대의 우승이 현대의 우승과 동일선상에 놓이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사람들의 평가 기준에 충분하리만치 적용이 되어 있고, 그걸 감안하더라도 11회 우승은 어마어마한 대업적이며, 그걸 이룩한 그는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는 소리이다. 결과적으로 "우승하기 쉬웠다"라는 논리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러셀이 그저 쉽게 반지를 쓸어갔다고 일차원적으로 폄하하기 보단 당시 리그의 환경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쨌건 29팀을 상대하는 것 보단 9팀을 상대하는 게 우승 반지를 노리기에 더 수월한 것이 사실이고, 보스턴이 샐러리 캡 없는 환경 내에서 수준 높은 선수들을 비교적 쉽게 끌어모을 수 있었던 몇몇 팀 중 하나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러셀과 경쟁한 동시대 라이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러셀의 라이벌 격인 윌트 체임벌린의 팀 동료들을 보면 'NBA 위대한 올타임 50인'에 선정된 선수만으로도 폴 어리진, 할 그리어, 빌리 커닝험, 엘진 베일러, 제리 웨스트 등이 있었으며[* 문서 맨 위의 틀을 보면 된다. 러셀의 동료들이 명전 선수가 8명이라면 윌트 체임벌린은 아예 명전을 넘어 NBA 올타임 50 멤버만 5명과 커리어를 보냈다. 그리고 명전급은 아니더라도 쳇 워커 같은 올스타급 조력자들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969년 윌트 체임벌린-제리 웨스트-엘진 베일러로 이어지는 레이커스 라인업의 경우, 무려 MVP 레벨 세 명이 한 팀에서 뛴 어마어마한 슈퍼팀이었다.[* [[르브론 제임스]]의 디시전 쇼와 함께 구성된 마이애미 빅 3, [[스테판 커리]]를 필두로 하여 정규 시즌 73승을 달성한 데다 [[케빈 듀란트]]라는 또 하나의 리그 최강급 선수가 후속 합류한 골든스테이트 등 초 슈퍼팀이 나타나는 2010년대를 제외하면, 저 정도 슈퍼팀이 결성되는 건 지극히 드물고 어려운 일이었다.] 근데 러셀과 셀틱스가 레전드가 된 것은 이들이 막강한 동시대 다른 라이벌들을 제치고 매번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체임벌린이 '커리어 전반적으로 봤을 때' 보스턴에게 밀리는 전력의 팀에서 뛰어온 기간이 적지 않지만, 정작 오버롤이 확연히 앞서는 초 슈퍼팀을 꾸리고도 보스턴에게 패한 전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된 듯이 스타급 선수들이 몰려있던 것은 레이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은 셀틱스에게 전패를 기록했고, 그 독보적인 업적을 기록한 셀틱스의 중심엔 러셀이 있었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보스턴 셀틱스가 당시 선수 수급에 비교적 유리했던 팀 중 하나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스타 군단, 즉 '슈퍼팀'이라고 후려치긴 어렵다는 것이다. 러셀이 커리어 내내 총 8명의 명예의 전당 멤버와 뛴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스타급 플레이어가 아니라 당시 너무나 위대한 팀인 셀틱스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경우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Satch Sanders 같은 경우 명예의 전당 멤버이지만 통산 기록이 9.6점 6.3리바운드 1.1어시스트에 불과한 지극히 평범한 선수였고 올스타에도 한 번도 선정이 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감독으로 뛰어난 커리어를 보낸 K.C. 존스도 커리어 7.4점 3.5리바운드 4.3어시스트에 그쳤고 올스타 경력도 없다. 게다가 종종 언급되는 "명전 멤버 8명"은 러셀의 커리어 초반부터 후반까지 뛴 선수들 전부 포함한 수치이다. 러셀의 멤버 중 가장 뛰어났던 [[밥 쿠지]]는 63년에 은퇴해 러셀의 커리어 반밖에 함께하지 않았고, 하블리첵이 러셀과 함께 뛸 때는 "떠오르는 스타" 정도 위치였으며, 빌 샤먼은 러셀이 5년차 때 은퇴했다. 러셀과 십 년, 혹은 그 이상 같이 뛴 선수는 새치 샌더스, K.C. 존스, 짐 로스커토프 그리고 샘 존스뿐인데 이 중 단 한 번이라도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는 샘 존스 한 명뿐이다.] 그리고 보스턴의 라이벌이었던 로스앤젤레스나 필라델피아 등의 빅마켓 팀들은 보스턴과 마찬가지로 선수 수급이 수월했다. 샐캡이 없어 유리했던 건 딱히 보스턴만은 아니었다는 소리[* 게다가 보스턴은 그때나 지금이나 '빅'마켓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렇다고 작은 마켓은 결코 아니었고, 러셀 Era에서 최고의 농구 명문으로 발돋움하여 전국구적인 인지도와 명성, 기반을 쌓은 덕에 선수 수급에 불리함이 없었던 것.][* 게다가 보스턴 셀틱스의 첫 우승이 1957년이었고, 이때 러셀은 루키임에도 주전 센터로서 13.3점 22.9리바운드에 기록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블록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오기 전까지 레전드 밥 쿠지는 커리어 절반을 뛰면서 한 번도 우승을 못하고 있었고, "명문 보스턴 셀틱스"의 이미지는 사실상 러셀 시대에 다 만든 것이다. 보스턴은 70년 넘는 세월동안 17회 우승했는데, 그 중 11회가 러셀이 뛰던 13년 동안 이뤄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마켓인 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에서만 뛴 체임벌린보다 더 많은 반지를 쓸어담고, 팀 차원에서 라이벌이었던 레이커스보다 월등한 실적을 낸 것은 반박할 수 없다.[* 애초에 프로 스포츠에서 "모든 팀이 같은 조건"이란 상황은 존재할 수가 없다. 지금은 샐러리 캡이 있어 예전과 달리 스몰마켓 팀도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저력을 갖출 수 있지만, 현재도 로스앤젤레스 같은 빅마켓은 르브론 제임스 같은 초특급 FA를 덜컥 데려오는가 하면, 앤서니 데이비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아득바득 오기 위해 애쓰는 팀이다. 반면 멤피스 그리즐리스 같은 팀들은 좀 못하면 슈퍼스타들이 우수수 빠져나간다.] 포인트는 러셀의 셀틱스가 1950, 1960년대 팀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어느 정도 수혜를 받은 팀 중 하나일지언정, 동시대의 강력한 라이벌 팀들을 시종일관 오버롤에서 압도하던 슈퍼팀이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애초에 셀틱스는 각자 멤버들의 역할이 잘 조화된 역사적인 강팀이었지, 여러 명의 스타 플레이어들로 빅 3~판타스틱 4 주전 라인업을 꾸리는 팀은 아니었다.[* 이는 조던의 불스와도 흡사하다.] 또한 당시 기록들이 다수 부풀려진 것은 맞지만, 중요한 건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은 이 부풀려진 기록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난 기록을 냈다는 것이다. (리바운드 측면에서) 당시 기록 몇 개만 보자. 1962-63 시즌에 리바운드 1, 2, 3위는 윌트 체임벌린 24.3개, 빌 러셀 23.6개, 월트 벨라미 16.4개이다. 1, 2위가 3위의 거의 1.5배 수준이다. 현대로 따지면 1, 2위가 각각 15개, 14.5개인데 3위가 10개인 수준.그 전 시즌엔 그나마 차이가 적어서 2위 러셀이 23.6개, 벨라미가 19개이다. 1963-64 시즌엔 러셀이 24.7개로 1위, 체임벌린이 22.3개로 2위, 제리 루카스가 17.4개로 3위이다. 이처럼 당시 러셀은 당시 기준으로 봐도 독보적인 리바운더였다. 기록이 부풀려진 경우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 같이 기록이 부풀려진 상태에서 러셀과 체임벌린의 리바운드 기록이 압도적이었다는 게 포인트. 또한 러셀은 애초에 스탯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아니라, 너무나 압도적인 우승 기록 덕분에 높이 평가받는 선수이다. 스탯으로 따지면 그는 동시대 라이벌 체임벌린에 비교도 안 되지만, 모든 선수 평가에서 그는 체임벌린과 엎치락뒤치락한다. 애초에 스탯으로 평가받지도 않는 선수에게 스탯을 두고 과대평가 운운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과대평가론과 별개로 빌 러셀, 래리 버드를 둘 다 코칭했던 [[레드 아워백]]같은 경우 래리 버드를 [[https://web.archive.org/web/20130930041901/http://sportsillustrated.cnn.com/basketball/nba/1998/bird/flashbacks/1988flash.html|빌 러셀 위로 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